제헌의회부터 믿기 어려운 국회 풍경
기도로 시작해, 자리다툼이 첫 안건
언론은 매번 ‘최악의 국회’ 평가

정치혐오 조장 아닌가 항변할 생각도
돌아보니 스스로 품위 무너뜨린 국회
자괴감 들지만 헌법기관 기능 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의원’ 나오길
2018년 9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의 제20대 국회의원들이 국회 개원 70주년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동취재사진

국회 회의록을 읽다 보면 우리 입법부에 대해서 최고의 존경심을 갖기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헌의회를 보자. 대한민국 국회에서 처음으로 회의가 열린 것은 1948년 5월31일 오전 10시다. 길고 긴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았지만 아직 헌법도 만들지 못한 나라. 좌우의 극한 대립으로 애초에 정한 200명에 못 미치는 198명의 의원만 모였지만, 5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은 유권자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국회를 지켜보았을 것이다.(제헌의회의 의원정수는 200명이었지만 제주 4·3사건으로 제주도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 2명을 선출하지 못해서 198명으로 구성되었다.)

제적의원 수보다 찬반이 많아

그럼 이 역사적인 날 그렇게 힘겹게 모인 국회의원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기도를 드리는 일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임시 의장으로 뽑힌 이승만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윤영 의원을 불러내서 기도를 올리도록 한다. 지명을 받은 이 의원의 기도문 내용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독립을 위해서 피와 눈물을 쏟은 선열들에 대한 감사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백성들에 대한 위로는 한마디도 없이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으로 일관하다가,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으로 끝맺는다.

정식으로 국회의장을 선출한 뒤(초대 의장으로 역시 이승만 박사가 선출되었다) 첫번째로 실시한 표결의 모습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안건은 ‘자리 배치’였다. 나라 살림이 어려웠던 그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국회 회의록을 보면 회의장의 음향 시설이 부실해서 뒷자리에서는 발언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불평이 많았다.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의원님들은 무조건 앞자리를 선호하는 법. 누가 앞에 앉아야 하는지를 두고 출신도별로 앉자는 의견, 추첨을 해서 자리를 정하자는 의견이 경합을 벌인 끝에 추첨으로 정하자는 의견을 놓고 투표를 하기로 했다. 방식은 거수. 여기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숫자를 헤아린 국회 사무총장은 의장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재석 197인, 가(可)가 93, 부(否)가 119입니다.” 회의장에 197명밖에 없는데 찬성과 반대를 합해서 212표가 나온 것이다. 적어도 15명의 국회의원이 찬성도 하고 동시에 반대도 했다는 뜻. 아마 뭐 하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옆 사람 손 들 때 따라 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첫번째로 다룬 안건(의장, 부의장 선출을 제외한 첫번째 안건)이 의원들의 자리다툼에 관한 것이었고, 그나마 그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후 우리 입법부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죽하면 그 당시 의원들조차 “앞에 있는 의원은 그 자리를 좋아하고 뒤에 가기 싫어하고, 이러한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몇시간 협의하고 오늘도 또 협의하는 것은 우리 국회의 수치입니다”라고 한탄을 했을까.

제헌의회는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실수도 많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했다고 치자. 그 이후 우리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발전했을까. 적어도 국민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흔히 제20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라고 한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에서 “최악의 국회”라는 검색어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과연 그런지 의심이 든다. 처음 등장하는 뉴스는 1999년 12월29일치 <연합뉴스> 기사. “역대 최악의 국회, 가장 비생산적인 국회, 정치가 실종된 무기력한 국회….” 15대 국회를 두고 나오는 얘기다. 그런 기사는 4년마다 줄줄이 이어진다. 2004년 2월10일치 <서울경제> 기사를 보자. “16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로 역사에 남을 일을 또 하나 추가했다….” 본회의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공언을 어겼다고 비판하는 기사다. “더욱이 개탄스러운 것은 비리 혐의로 구속된 서청원 의원 석방동의안을 처리해 제 식구 감싸기에는 귀신 같은 솜씨를 보였”다는 조소도 빠지지 않는다.

그 이후의 국회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지난 4년간 국회가 열릴 때마다 여야 의원들 간 몸싸움은 기본이고 국회의장 단상 점거와 철야 농성이 줄을 이었다. 국회의원의 품격과 명예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막말과 욕설도 난무했다. 이로 인해 정치권 안팎에선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17대 국회를 비판한 2008년 5월24일치 <서울신문> 기사) “국회의사당 내에서, 국회의원이 최루탄을 투척하는 사태로 인해 한국 의회정치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 의정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국회 내 최루탄 폭력으로 대한민국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불명예를 안고 전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18대 국회에 대한 2011년 11월24일치 <동아일보> 기사) “최악의 국회 19대 의원들 2016년 총선 나갈 자격 있나. …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비리에 연루돼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이 18명이나 되고, 1·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이 선고돼 있는 의원도 6명이다. 오죽하면 이달 초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19대 국회의 역할 수행에 대해 82%가 ‘잘못했다’고 평가했겠는가.”(19대 국회에 대한 2015년 10월27일치 <동아일보> 기사)

억울한 심정에서 출발했지만

인터넷 뉴스 검색이 활성화되기 전이어서 그렇지 14대 국회 이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느 시절이나 그 당시의 국회는 그때까지 최악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 셈이니 지금 현역인 20대 국회의원으로서는 역설적으로 안심이 되는 점도 있다. 아무리 최악이라는 평을 들어도 지금까지 추세로 볼 때 21대 국회는 더 못할 것 아닌가. 22대는 그보다 더 못할 것이고 23대 국회는 조금 더 못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역대 국회 중 평균치 정도 되지 않을까. 아닌가?

올해 초 이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부딪혀보고 싶었던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국민들이 직접 뽑은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가 우리 사회에서 최악의 집단이고 점점 더 나빠진다는 말인가. 지나친 정치 혐오에서 나오는 허위나 과장의 혐의가 아닐까.

억울하다는 심정이 있었다.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단축 성장을 이루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사회 갈등을 국회 탓으로 떠넘기는 경향이 실제로 존재했다. 대부분의 역대 정권은 이런 기류를 막기는커녕 이용하거나 오히려 조장했다. 정권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빨갱이’ ‘반민족 의원’이라며 연행하고 툭하면 국회 해산을 입에 올리던 이승만 대통령, ‘10월 유신’을 선포해서 국회의원 3분의 1을 아예 자기 맘대로 뽑도록 만든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친박연대’라는 기상천외한 이름의 정당을 만들도록 허용한 것도 모자라 ‘진박 감별사’를 내세워서 무릇 국회의원이란 정권과 대통령에게 무조건적으로 충성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을 관철시키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과연 대한민국 정치의 타락과 수준 낮음에 원인을 제공한 주 책임자는 누구인가. 청와대인가, 국회인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칭적으로 막강한데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예외 없이 국민들의 냉소 속에 불행한 운명을 맞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 아닐까. 실제로 우리 국회가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제대로 견제를 해낸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일부의 여론에 영합해서 의원들의 권한을 줄이고 주민소환제를 도입해서 더욱 그 손발을 묶자는 소위 ‘국회개혁론’은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외면하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 아닐까. 그런 항변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현역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1년간 칼럼을 쓰다 보니 역시 반성과 자책이 앞서게 된다. 특히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회가 공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도 열혈 지지층만을 의식한 채 품위 없고 무책임한 막말을 연발하거나 그 와중에도 공천을 의식해서 별 의미 없는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는 데 집착하는, 나를 포함한 의원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무슨 낯으로 글을 쓰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개선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권 교체가 몇번 이루어지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계열의 정당들이 여당, 야당 역할을 모두 해보면서 정치권 전체가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이 생겨났다. 우선 여당은 청와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대통령과 공동운명체인 집권당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견제 기능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에게 우선하는 것은 소속 정당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바닥을 길 때는 예외 없이 무조건적인 충성을 외치는 여당이 있었다. 야당은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치가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변질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다. 야당 시절에 함부로 던진 반대 때문에 집권 이후 발목을 잡힌 경험은 양쪽 모두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편과 상대방에 대해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원칙이다. 국민들이 우리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내로남불’이다. 옳은 일은 남이 해도 옳고, 그른 일은 내가 해도 그른 것이다. 이게 되어야만 최소한의 합의점이 생기고 타협의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정치는 선과 악이 벌이는 투쟁이 아니고 완전무결한 정의의 실현이 될 수도 없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 국민 중에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유한국당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정의당이나 우리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도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 일부를 대한민국에서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갈등을 조절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존경받는 의원이 되고 싶다”는 꿈

국회의사당에서 첫 회의가 열린 지 7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났다. 이제는 우리 국회도 매번 역대 최악을 갱신하는 모습을 벗어나야 한다. 의원이 된 뒤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정치적 꿈이 무엇입니까?”라는 것이다. 나는 항상, “존경받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국회의원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여야 양쪽에서 존경받는 국회의원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 금태섭 : 국회의원(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